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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축구 기사/독점 인터뷰

[첼시공식 홈페이지] 항상 'No'만을 받아왔던 캉테

by 마루샤 2021.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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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chelseafc.com/en/news/2021/06/15/-the-answer-was-always-the-same--no----kante-on-dealing-with-rej?cardIndex=0-0 

 

‘The answer was always the same: no’ – Kante on dealing with rejection as a youngster, the French lower leagues and traini

N’Golo Kante’s path to the very top of the game was trickier than most, but tonight he goes into France’s opening game of Euro 2020 against Germany widely regarded as the best midfield player in the world. Here, in his own words, he tells his story a

www.chelseafc.com

 

은골로 캉테의 최정상을 향한 행보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에 있어서 캉테는 세계 최정상에 오른 미드필더로서 평가받고 있으며 곧 캉테는 독일과의 경기를 시작으로 유로 2020의 서막을 올리게 된다.

 

이 인터뷰에서 캉테는 겪었던 축구선수라는 꿈이 실현되지 않았을 경우에 대비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던 자신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제가 프로 축구선수로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12살, 14살, 16살 때도 항상 프로축구 구단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제가 들었던 답은 항상 똑같았죠."

 

'우리 구단은 이미 은골로 캉테와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 혹은 그보다 더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데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프랑스 근교 팀에서 뛰었던 어린 시절의 캉테

 

저는 그들에게 이런 말들을 들었을 때 항상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10살에서 19살 사이에, 저는 쉬렌이라고 불리는 파리 교외에서 동네 수준의 축구를 하고 있었고, 그 위에는 지역적, 국가적 수준의 선수들이 있어서 그러한 위치에 있는 선수들보다 낮은 수준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저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과 경기를 했기 때문에 저는 제 스스로 제가 우리 동네 팀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수도 있고, 더 발전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했습니다. 언젠가 제가 입단 테스트를 하러 갔을 때 저는 주변 선수들을 보고 그들이 기술적인 부분에서든 전술적인 부분에서든 제가 경기하는 데 익숙했던 수준보다 더 뛰어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테스트 후에 입단하지 못했을 때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이라는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습니다..

 

단지 그 경험이 있고 1년이라도 그 수준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지만, 하루나 일주일간의 시험에서는 그렇게하기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 볼로뉴에서 캉으로 합류한 캉테

 

결국 19살에 볼로뉴에 가서 프랑스 6부 리그인 2군에서 뛸 기회가 왔습니다. 시즌 말에 1군으로 콜업된 선수 중 한 명이 되었고, 선수 생활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모두가 알다시피 모든 선수들이 프로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공부또한 병행해야 했습니다.

 

수학을 꽤 잘했기 때문에, 학교의 마지막 학기에서 있었던 대학 진학 상담에서 지도교수님은 회계사가 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저는 아마 그것이 좋은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해, 대학 진학 시험을 통과한 후 회계 강좌를 듣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향을 떠나 처음으로 볼로뉴에 도착했을때, 제 마음속에 있던 청사진은 단지 시험에 합격하는 것과, 프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제 스스로를 연마하는 일 단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그저 한걸음씩 축구와 공부를 위해 나아갔습니다.

 

주말에도 원정을 많이 다녔고 방과 후 훈련도 있어서 때로는 공부할 시간, 숙제를 하고 그 숙제를 수정을 할 시간을 찾기가 어려웠지만 모든 것을 따라가기 위해 제 자신을 밀어 붙였습니다. 저는 최고의 학생은 아니었지만 시험을 통과해서 무척 행복했었습니다.

 

독일전 대비 훈련에 참여하고 있는 캉테

 

경기장에서, 저는 더 높은 수준에 적응해야 했어요. 이제 6부 리그에서 정기적으로 뛰기 시작했고, 팀에서 더 자신 있고, 기분이 좋았고, 때로는 골을 넣기도 했죠.

 

제가 21살이 되었을 때, 감독님과 구단으로부터 1군에서 일주일에 한 번 훈련받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어요. 때때로 제게 1군과 함께 훈련하라며 학교에 가지 말라고 요청했고 그때가 제가 '설마...'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때였어요.

 

레스터 시티와 계약을 한 캉테

 

 

제게 있어서는 무척 좋은 단계였어요. 훈련하는 프로 선수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 배우고, 그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정말 열심히 하면 저도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린 나이에 프로가 되기 위해 아카데미를 거치지 않고 축구에 뛰어든 것이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상황이었어요. 평범한 유소년 아카데미를 거친 선수들과는 다른 길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자신의 커리어에 유로 우승 트로피를 추가하고 싶은 캉테.

 

저는 항상 제 자신을 되돌아 보고, 제가 지나온 길을 보곤 했습니다. 심지어 아카데미에서 제 또래의 다른 선수들을 만나고 그들이 프로가 되는 모습을 될때도 말입니다. 볼로뉴의 2군에서 뛰던 당시 제 세대의 선수들은 이미 유럽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저는 제가 프랑스의 1부 리그에서 6단계나 아래의 리그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제 스스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축구를 저의 직업으로 삼기 위해,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저 차근차근 제가 할 수 있는한 최선의 방법으로 제 일을 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서 모든 일들이 차근차근 실현되기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프로가 돼서 어린 시절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을 따냈지만 프로 생활을 시작하면서 저는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러한 경험은 제가 선수로서 그리고 또한 한명의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저는 제가 경기를 뛸 수 있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계속해서 성공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이루고 싶습니다.

 

저를 자극 하는 동기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같습니다. 항상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야지 하는 것은 제게 있어서 큰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축구에서의 성공은 곧 팀의 성공인 것이고 이것이 항상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팀 동료들과 함께 우승 컵을 들어올리는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역 및 오타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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